'걷기', 인상 깊었던 구절과 공감하는 생각의 기록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 나의 숨구멍, 걷기.
종일 걸었던 어느 하루, 산뜻한 아침공기, 내 등을 달궈주던 햇살부터 걸은 뒤 느꼈던 기분과 감정까지 생생히 되살아났다. 길 위에서 우리가 쌓은 추억과 순간들은 내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일상까지 따라와 있었다. 전과 비할 바 없이 건강해 보이는 내가 서 있었다.
걷기가 주는 선물은 길 끝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 모과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들은 결국 서울에서 해남까지 걸어가는 길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어릴 때는 이런 희망과 꿈이 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지만, 나이 들수록 그 폭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고 뉘우치며 포기하는 단계까지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 걸을 때가 가장 행복하기도 하는 동시에,
기분은 인생에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기분'이라는 것을 잘 달래 가며 일상을 온전히 유지하는 방법, 어디 없을까? 나는 걷기를 선택하는 편이다.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에는 어쩐지 그 고민의 무게가 좀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다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배가 너무 고프다. 고심해서 고른 오늘의 식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한 다음 밥을 먹는다. 먹으면서 문득 깜짝 놀란다. '나 방금 전까지 고뇌했던 사람이 맞나?'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아까 무슨 고민을 했었는지 떠올려보는데 낮에 느꼈던 것만큼 중대하고 어려운 상황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분명히 심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까지 엄청난 위기 같지는 않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 별것 없다. 그저 어제의 고민이 그다지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만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기분에 짓눌려서 문제를 키우고 고민을 부풀린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 걸을 때 비로소 알게된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걸.
만약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서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면 그저 나가서 슬슬 걸어보자.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 모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
한때 나는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 비교하지 않는 나의 페이스대로,
내 다리를 뻗어 천천히 한 걸음 내딛는 행위는, 잊고 있던 내 몸의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 이 땅에 뿌리내리듯 쿵쿵 딛고 걸어가는 게 좋다. 걷기는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
→ 내 발로 직접 걸어 나가자.
나는 뭐에 그리 쫓겼는지 인생을 여유 있게 즐기는 법도, '쉼'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 중에도 나는 잘 쉬는 게 아니라 내가 다닌 곳의 흔적을 남기려 안달했던 것 같다. 하와이에 가면 나는 자연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이 지구, 이 땅의 일부라는 안정감을 느낀다. 하와이의 자연은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사람을 위로해 주는 힘이 있다.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잘 가고 기분이 편안해진다. 만약 내 인생에 '마지막 4박 6일'이 주어진다면, 난 진심으로 뭘 하고 싶은가? 결론은 걷기였다. 나는 몸을 움직여 계속 걷고 싶었다. 나는 힘들면 힘들수록 하와이에 가고 싶다. 내게 하와이가 없었다면, 많은 일과 부담 속에서 진작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와이에서 나는 자연의 품속에 숨을 수 있고, 그 밑에서 걱정 없이 쉴 수 있다. 하와이는 배우 아닌 자연인 하정우가 일상에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이자 아늑한 동굴이다.
현대인들은 정말 치열하게 일한다. 그런데 정작 일은 너무나 열심히 하는데 휴식 시간에는 아무런 계획도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대로 던져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방기'는 결과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피로를 잠시 방에 풀어두었다가 그대로 짊어지고 나가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처럼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하와이는 그렇게 내가 찾아갈 때마다 휴식의 새로운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
→ 무너질 것 같을 때에는 나의 안식처로 떠나 쉬어가도 괜찮다. 그것 또한 노력의 일부이니까.
뭐든 꾸준히 하려면 그것이 '특별활동'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야 한다. 웬만한 거리는 내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게 좋다. 굳이 운동 시간을 따로 내지 않더라도 이렇게 두 다리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걸음수를 뿌듯하게 채울 수 있다.
→ 지속적인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나이 들고 아픈 다음에 병원비를 왕창 들일 생각을 하면, 지금 우리가 걷는 만보는 억만금의 가치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늘 우리가 고단함과 귀찮음을 툭툭 털고서 내딛는 한걸음에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 나의 오늘을 위로하고 다가올 내일엔 체력이 달리지 않도록 미리 기름치고 돌보는 일. 나에게 걷기는 나 자신을 아끼고 관리하는 최고의 투자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이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걷는다는 것, 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통해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원 없이 걷고 먹고 숨 쉰다. 걷는 사람들의 천국인 하와이에서 한국보다 덜 걷는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걷기가 가져다주는 기쁨과 활력을 체험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하와이에 있고, 그래서 함께 걷는다.
→ 걷기만으로도 지극히 행복한 나를 지속시키면서.
하와이에 오면 걷기 기록을 경신하고 싶어 진다. 어느 날 걷기 모임 멤버들은 우리 자신을 넘어서 더 높은 고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하루 10만 보, 가능할까? 뭘 고민해? 일단 해보는 거지!
다리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고장 난 부품 같다. 한 보 한 보가 너무나 힘들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귀찮다'는 생각마저 든다.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며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 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걷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해 멘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이 길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부정하며 '포기할 만하니까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거다.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포기하고 싶어질 때 의미라는 것을 찾고 포기를 정당화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묵묵히 최초의 목표를 향해 매일의 할 일을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장거리를 걸을 때는 지치기 쉽다. 판단력도 흐려진다. 그러므로 걷는 시간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쉬는 시간'이다. 지쳤다고 그냥 늘어진 채로 목구멍에 물만 들이부으면 영락없이 탈이 난다. 누구도 쉬지 않고 계속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도저히 나가서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혹은 걷다가 체력이 달려서 집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던 날, 그런 순간들을 견디게 만든 것은 결국 걷기를 다 마치고 돌아올 때의 성취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그러니 어쩌면 한 걸음 한 걸음은 미래를 위한 저축 같은 것이다. 지금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괴롭기까지 하지만 훗날 큰 감동과 의미와 자신감을 선물해 주니까.
죽을 만큼 힘든 사점을 넘어 계속 걸으면, 결국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조금 더 걸을 수 있다.
→ 아무리 힘들어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티고 걸어 나가자.
나는 한강을 '내 집 마당'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강 변을 걸어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색 나뭇잎들을 보며 나무 사이로 걸으면 내가 지금 대도시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된다. 올라갈 때는 고되지만 내려올 때의 풍경이 더없이 황홀하다. 강이 유유히 흐르고 눈앞에 짙푸른 녹음이 드넓게 펼쳐진다. 동쪽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서쪽 코스도 서울의 요지를 끼고 요리조리 굴려볼 수 있다.
당신은 동서남북 어디로도 갈 수 있다. 당신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자신만의 길과 행보를 만들 수 있다. 당신이 사는 곳 주변에 당신만의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된다.'
→ 힘들 때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드렸더니 써주신 아립언니의 말과 같은 말. 잊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하와이는 제2의 집과 같은 곳이다.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내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곳. 그러니 어쩌면 내가 하와이에 가는 일은 여행이라기보다 귀가라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나는 항상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느냐? 걷는다. 나는 더 제대로 걷기 위해 자꾸만 하와이에 가는지도 모른다. 드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반얀나무 길과 탁 트인 잔디밭 사이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로 뭉쳐 있던 가슴이 부드럽게 풀린다.
노을이 질 때 창밖을 바라보면 하늘의 빛깔이 무척 아름다워서 핸드폰으로 자꾸만 사진을 찍게 된다. 아직 해가 남아 있을 때 나와서 걷다보면 그 노을이 내 머리 위로 가만히 흘러간다. 이토록 초현실적인 빛깔의 하늘을 머리 위에 모자처럼 얹고 걷는 게 좋다.
해변에 놀러 나온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과 분위기를 만끽하며 사람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다.
내가 하와이에서 더 열심히 많이 걷는 데는 날씨도 한몫하는 것 같다. 하와이는 일 년 내내 한국의 초여름과 비슷한 기후를 보인다. 하와이의 기후와 온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걷는다. 밖으로 나가서 피부로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느끼며 걸으면,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감각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하와이에서 나는 가뭄 끝에 비를 맞는 식물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
→ 내가 제주를 대하는 생각과 감정과 동일해서 놀라웠던 구절들.
걷기 전에는 복잡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돌아올 때는 단순하고 가벼워진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생긴 불안함이나 초조함도 걷고 나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말끔히 사라져 있다. 나는 걷기가 나의 삶과 일을 도와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웬만하면 걷는다. '한겨울 걷기'에도 숨은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냥 적당히 걷다가 일찍 들어갈까, 마음이 약해지지만 일단 한 발만 떼면 저절로 걸어지는 법이라서 이내 열심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걷기의 매력 중 하나는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도 생명체인지라 날씨의 변화, 온도와 습도, 햇빛과 바람을 몸으로 맞는 일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 살아 있다는 실감을 얻고, 내 몸을 더 아끼게 된다. 봄과 가을의 햇빛이 다르고 여름과 겨울의 나무에서 각기 다른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 지구에 발 딛고 사는 즐거움이다. 겨울은 혹독하게 춥지만, 그 추위를 피부로 느끼는 순간조차 내겐 소중하다. 한참을 걷다 집으로 돌아오면 또 한 번의 마법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추위에 움츠러들고 복잡하게 꼬여 있던 속이 풀리면서, 어느새 생기 있고 행복한 상태로 바뀌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한겨울 오후 5시, 여명기나 황혼기에 햇빛의 양이 적당해서 아주 아름답고 부드러운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간대를 매직아워라고 부른다. 아마 이 시간대에 하늘을 올려본 적이 있다면 왜 매직 아워라 부르는지 이해할 것이다. 추위와 우울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저녁의 아늑함과 내 몸의 온기가 밀물처럼 다가오는 한겨울 오후 5시의 걷기. 우리가 계속 걸어 나가는 데 추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상 시작하면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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